나이 서른에 아직도 중고등학생 같은 친구들


약간의 방탈 죄송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다가 할 곳이 없어서 그냥 조언을 받기보다
넋두리 푸는 느낌으로 한 번 이야기해봅니다.

30대초반 여성이고, 저한테는 20년을 함께 해온 소꿉친구 4명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이정도로 소중한 친구가 있단 것 만으로도 인생 반쯤 성공한거란
말을 들을 정도로 가족 같이 소중한 친구들이고,
정말 마음 착하고 좋은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과는 초,중학교를 같이 나오며 매일 붙어 있었는데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저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모두 한 부모 가정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었습니다.
(가정폭력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다 찢어지게 가난함)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어릴 때 그 가난이 끔찍하게 싫었어요.
바퀴벌레 나오는 반지하방도 싫고, 뭘 하기 앞서 돈 걱정부터 해야하는 게 싫고
사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처럼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좀 독하게 공부했고,
결론적으로 또래들보다 조금 빨리 자리를 잡았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빼고 모두 상고를 나와 고졸취업을 했다가
블랙기업들을 만나 오래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하루 4시간30분 정도 일하는 사무보조일을 하고 있어요.

나름 저는 국비지원이나, 내신으로 갈 수 있는 괜찮은 전문대 등
이 친구들이 진로를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 제안도 해보고, 잔소리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더라고요.

가난이 익숙하고, 결핍에 불만이 없고, 아르바이트만 해도
적당히 노래방 다니고, 맛있는 거 사먹을 용돈 정도는 생기니
그걸로 만족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이제 서른인데.
친구들의 시간이 18살에 멈춰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도 만화, 게임, 아이돌 좋아합니다.
덕질하는 분야도 있고, 인형 좋아하는 키덜트입니다.

나이 먹었다고 주식, 경제, 사회, 정치에 대해 
꼭 심도있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정말 아이돌, 게임, 웹툰, 유튜버 이런 것들 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관심이 없습니다.
뉴스보다 “넌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하면 그런 거 내 알바 아니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큰 사회 이슈보다 메이플스토리 버닝 이벤트 같은데만 관심있어요.

가끔 대화하다보면 말투라던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그냥 딱 중,고등학생 같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고 직장에서 막 입사한 사회초년생들을 보면
가끔 “똑똑한 친구인데, 이런 일에 있어서는 아직 어리긴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러고 퇴근해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신입보다도 어린애 같은 친구들을 보고
한숨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진지한 주제가 나오면 “아~~몰라~~관심없어~~~”하면서
게임이나 아이돌이야기로 전환되는데…

가끔 식당에서 옆 테이블이 들을까 부끄러울 정도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여당과 야당이 정확히 뭔지(얼추 정치인 모임 아님? 정도로 생각)도 모를 정도입니다.
최저임금이나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어차피 자기가 관심 갖는다고
최저임금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데 영향있냐고, 그냥 관심 없다면서 요새 유행하는 
이상한 애니캐릭터 쇼츠 춤을 보여주고 제가 모른다고하면 
어떻게 이걸 모르냐고 합니다.
 
저도 뭐 그렇게 억대연봉을 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한테 적지만 생활비를 매달 조금 씩보내고
크진 않지만 제 취향대로 꾸민 아늑하고 깨끗한 제 공간에서 생활하고
명품은 아니지만 튼튼하고 깨끗한 물건을 쓰고
저축하며 취미생활을 합니다.

어릴 때 꿈꾸던 남들처럼 살고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조금 좋은 곳에 진학하고 싶어 욕심을 부렸는데,
그러다보니 학교에 부유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나는 지금 집에 가스가 끊기고, 핸드폰도 끊긴지 오래에,
밥도 엄마가 이모네에서 쌀을 얻어다 먹고 있는 처지인데

학교 끝나고 뭐 먹으러가자, 주말에 어디를 놀러가자 하는 것들이 부담되서
조금 친구들과 거리를 두었어요.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추억이 조금 없는 편입니다.
(수학여행도 못 갔고요.)

돈 한 푼 없는 게 당연한거라, 서로 집에서 모여 과자 한 봉지 뜯어 나눠 먹으며 떠들고
친구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모여앉아 놀던.
어쩌다 용돈을 좀 받으면 꼬깃꼬깃 돈을 모아서 즉석 떡볶이를 먹고 한 시간에
오천원 하던 노래방을 가던 추억이 있는 제 소중한 친구들.

그런 추억도 정말 소중하지만 이제 저는 조금 더 금전적으로 누리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이 소중한 친구들과 유럽은 힘들더라도 동남아 여행도 가고 싶고, 
백화점이 아니더라도 아울렛가서 쇼핑하고 싶고,
한 번씩 분위기 좋은 식당도 가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매번 뭘 하자고 할 때마다 돈이 없다고 합니다.
그쵸.
없겠죠.
안 버니까…

그러면서 나이 서른 먹고 아직도 고등학생 마냥 매번
“주말에 이 영화보러 코엑스갈래?”하면
“얼마 가져가야해?” “이만원 넘게는 못쓰는데”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제 속이 터집니다.

나는 어른이 되었는데.
왜 얘네는 아직 고등학생일까.
이게 한 번씩 너무 외롭고 속상해요.

그러던 와중에 얼마 전 친구 한 놈이 냅다 결혼을 해버렸습니다.
메이플에서 만난 남자애랑 반년간 연애하다 그냥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를 갈겨버리고,
남편 반지하 원룸 자취방에 신혼집을 차려버렸습니다.

속상하더라고요.
벽에 곰팡이 핀 반지하 원룸에서 예쁜 내 친구가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게.
냉장고라도 하나 좋은 거 놔주고 싶었는데, 165인 제가 허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천장이 낮은 주방에는 미니 냉장고 하나 겨우 들어가고.

그래도 이 녀석은 좋답니다.
30년을 엄마랑 같이 방을 쓰다가 처음으로 자기 공간이 생겨서 좋다고요.
둘이 돈 모아서 산 사양 좋은 더블 모니터 컴퓨터로 매일 남편 퇴근 후
같이 메이플 레이드를 뛸 수 있다고요.
진짜 그놈의 메이플.
속터지면서도 좋아하는 친구를 보면 또 저게 행복이 아닐까 싶고…

그러다 이번 월요일에 대학 친구가 청첩장을 준다고해서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만났어요.

맛있는 거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고,
각자 자기가 덕질하는 아이돌, 뮤지컬, 게임 이야기도 하고
물가 이야기, 집값 이야기, 주식 이야기, 제태크 이야기도 나누고
같은 과 동기다보니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직이나 연봉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저녁 전에 헤어졌어요.

이 날 저는 저녁에 그 결혼한 친구 신혼집에
친구들이 모이기로한 날이라 조금 뒤 늦게 합류하게 되었는데
너무 대학 친구들과 차이가 나더라고요.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데 또 얼마 있냐고 인당 2만원 안쪽 예산을 쪼개고 있길래
그냥 짜증나서 내가 낼테니까 그냥 시키라고 하고.

밥 먹으면서 대학 친구들을 만났는데 요새 회사들이 이렇다더라 이야기를 하는데
또 주제가 오로지 게임, 웹툰, 아이돌 이야기로 돌아가더라고요.
 
제가 힘든일이 있으면 새벽에 택시타고 찾아와 막상 저는 안 우는데 
자기가 울면서 안아주는 친구들.
내 “힘든 일”에는 감정적으로 공감을 해주지만 
그 배경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는 친구들.

제 잣대로 바꾸려는 것도 오만이고 욕심이겠죠.
제가 가장 친하고 소중한 평생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은 
앞으로 평생 이렇게 18살에 멈춰서 살고
나만 계속 30대, 40대, 50대 세월을 살겠구나.
그게 너무 속상해서 참 우울한 마음에 이렇게 넋두리를 적어봅니다.